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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ince 2000.03.30

 

 ♣ 청계천(淸溪川)과 청계천로(淸溪川路)의 역사 ♣

 

 

 

▒▒▒▒▒청계천(淸溪川)▒▒▒▒▒

 


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. 길이 3,670`m. 최대 너비 84`m. 북 악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[箭串橋] 근처에서 중랑천(中浪川)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 강으로 빠진다.

본래의 명칭은 ‘개천(開川)’이었다. 조선 왕조의 한양정도(漢陽定都) 당시 이 내는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지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,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, 제3대 왕 태종이 개거공사(開渠工事)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 사업을 시작하였다. 그 후 영조 때에는 준설 양안석축(兩岸石築) 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 사업을 시행하였다.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. 순조 고종 때에도 준설 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(水標橋) 오간수교(五間水橋) 광교(廣橋) 영미교(永尾橋) 관수교(觀水橋)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.

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(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)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행하 여졌다. 8˙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, 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∼주교(舟橋) 1∼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`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. 답십리동(踏十里洞) 신답초등학교 앞까지 복개된 그 위에는 고가도로가 건설되어 있다.

2003년 07월 01일부터 2005년 09월30일 까지 청계천 도로위의 삼일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한 청계천 포장도로를 걷어내고  예전의 청계천으로 복원하여 현재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.

 

 

▒▒▒▒▒청계천로(淸溪川路)▒▒▒▒▒

 


서울 종로구 종로1가동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대문구 답십리동 신답초등학교 앞에 이르는 도 로. 길이 6,000`m. 너비 50`m.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을 복개한 것으로, 1958년 2월 광교(廣橋)에서 착공, 몇 단계를 거쳐 79년 11월에 마장교까지 완성하였다.

도시의 산업화와 함께 각종 생활오수의 대량 유입에 따른 청계천 오염에 대비하고, 또한 60년대 이후의 경제 발전에 따른 도로용량의 증대에 대처하기 위하여 건설된 이 간선도로는 도시 미관과 주거 환경의 개선, 그리고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 바 크다.

이 도로 위에는 한국 최초의 고가도로인 삼일고가도로가 설치되어 자동차 전용도로의 역활을 하고 있다.

그러나 현재 청계천 복원공사로 인해 삼일고가 도로가 철거되었고 청계천로를 걷어내어 2005년 10월1일 시냇물이 흐르는 개천을 만들었습니다.

**  이상은 예전의 두산동아 대백과 사전에서 인용한 글과 현재의 공사중 내용입니다.  **